인류의 역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에너지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 문명이 탄생한 고대에는 불을 지필 수 있는 나무가 주요 에너지 자원이었다.
당시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 불리는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많은 나무들이 있었고, 이 지역을 차지한 나라들이 글로벌 패권을 가져갔다. 바빌로니아·아시리아·페르시아가 차례로 이 지역을 차지했고, 패권국으로 자리매김 했다.
산업혁명이 발생한 18세기부터 오늘날까지는 석탄과 석유라는 에너지 자원을 확보한 국가가 글로벌 패권을 가져갔다. 영국과 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 등 세계 열강은 석탄과 석유를 확보하고자 팽창했고 20세기 초 두 차례 세계대전이 발발하기도 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자원을 확보한 나라가 곧 글로벌 패권을 장악한다는 공식은 유효하다.
에너지의 패러다임은 변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불을 지필 수 있는 나무가 에너지 자원이 중심이었다면, 18세기 이후에는 엔진을 돌릴 수 있는 석탄과 석유가 주요 에너지원이었다.
21세기는 전기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전기차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전기의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전기를 만들 수 있는 에너지 자원은 기존 발전에 사용됐던 석탄과 석유, LNG는 물론 원자력까지 더욱 필요해진다.
한국 같이 석유와 LNG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일수록 에너지 안보 리스크는 클 수 밖에 없다. 2010년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자유무역주의 때만 하더라도 에너지 자원 수급에 큰 지장은 없었다. 돈만 있으면 외국에 석유와 LNG 등을 사올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미중 무역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같이 갈등이 커지면서 국가간 장벽이 생기면 우리나라와 같은 국가는 에너지 안보 위기가 발생한다.
국내 에너지 수입량 및 수입 의존도 Ⓒ 에너지통계월보(‘23.2, 국가에너지통계 종합정보시스템)
결과적으로 한국은 적은 자원으로 많은 전력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원자력 발전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석유와 LNG에 의존하던 기존 발전 체계는 에너지 수급 불안정으로 전기요금이 급등한 한계가 발생했다. 그렇다고 전력 공급 안정성이 아직 불안한 친환경 발전은 아직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없다.
미국, 중국, 프랑스 등 강대국들은 최근 원전 비중을 급격히 늘리고 있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436기다. 미국이 93기로 가장 많다. 이어 프랑스(56기)·중국(56기)·러시아(37기) 순이다. 이와 별도로 전 세계에서 ‘건설 예정’ 원전이 100기인데 이 중 중국이 45기다.
주요 국가별 원전 운영 현황 Ⓒ IAEA PRIS(전력정보시스템)
국내에서 원자력 발전을 확대하기 전 까지 여전히 난제가 많이 남은 상황이다. 당장 원전에서 사용되고 나온 방사성폐기물이 갈 곳을 잃고 미래 세대의 빚처럼 쌓여가는 실정이다. 2030년에 들어서면 고리, 한빛, 한울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 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다.
올해 들어 월성 원전과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방문 당시 휴대용 방사선 선량계 수치는 0밀리시버트(mSv), 방사선 누출은 전혀 없었다. 생활 속 방사선량이 평균 0.117mSv인 점을 고려하면 자연 방사선량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이제는 원전과 방폐장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원전을 통한 에너지 확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