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산업 확대로 구리 사용처 늘면서 구리 수요 증가
구리 공급량 및 재고율 하락으로 가격 상승
구리 관련 산업에 자금 유입 많아
친환경 산업 성장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원자재 시장에서 구리의 중요성과 가치도 커지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제프 커리(Jeff Currie) 원자재 리서치 글로벌 수석은 2023년 9월 CNBC와의 인터뷰에서 구리가 석유만큼이나 그 중요한 원자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주기율표상 전기를 충분히 전도할 수 있는 것은 구리가 가장 적합하다”며 “세계가 친환경 시대로 진입하면서 전기 사용량이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이러한 세상을 구현하는데 구리가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골드만삭스는 2040년 친환경 목적으로 사용되는 구리의 양은 2023년 대비 47%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12월에 진행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오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 사용량을 3배로 확대하는 내용에 60개가 넘는 국가에서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 같은 탄소 감축 및 탄소 중립에 대한 국제적인 움직임이 산업 금속 수요를 구조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친환경에 대한 인식 높아지며 전기차 시장 확대
지난 2022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California Air Resources Board)는 2035년부터 탄소 배출량이 많은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계획을 승인했다. 캘리포니아주는 미 환경보호청(U.S.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EPA)에 청정 대기법(Clear Air Act)에 따라 계획을 진행할 수 있도록 승인을 요청한 상태이다. 캘리포니아주를 필두로 내연기관차 판매를 줄여나갈 계획을 하고 있는 주가 늘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을 통과 시키면서 전기자동차 구매 시 최대 7500달러의 인센티브를 제공하자 전기 자동차 판매는 더욱 활기를 띄고 있다. 미 에너지부는 2023년 140만 대의 전기자동차가 판매됐으며, 이는 전년대비 50% 성장한 수치라고 발표했다. 내연차에 비해 모터와 배터리가 많이 사용되는 전기자동차 제조에는 대당 평균 83kg의 구리가 사용된다. 이는 내연차(21.8kg)의 3.8배에 달하는 양이다.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Fortune Business Insight)는 미국 전기자동차 시장이 2028년 연평균 25.4% 성장할 것으로 전망해, 전기자동차 제조에 사용되는 구리 소비량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유형별 차량 한 대당 구리 사용량>
(단위: kg)
[자료: Copper Development Association]
<미국 전역 충전소 설치 현황>
[자료: National Renewable Energy Lab(NREL)]
전력망 확충에만 150억 달러 투자
미국 내 전기차 충전소 보급과 함께 전력망 확충 사업 또한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현재 미국의 전력망은 1950~1960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건설됐다. 전력망 설비가 노후 됐을 뿐 아니라 늘어가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던 시점에 인프라 투자 일자리법(Infrastructure Investment and Jobs Act, IIJA)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통과돼 전력망 확충을 위한 재원 150억 달러가 확보됐다. 이에 미 에너지부는 2022년 1월 더 나은 그리드 구축(Building a Better Grid, BBG) 이니셔티브를 발표하고 고용량 전력망을 개발하고 배전 시스템 현대화하는 것에 예산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전력망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인 전선의 주요 원자재가 구리인 만큼 전력망 확충에 소비되는 구리량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 예정인 미국 전력 프로젝트>
[자료: Americans for a Clean Energy Grid]
친환경 발전소 건설 증가
친환경 발전 시스템 도입도 구리 수요를 증가시키는데 한 몫하고 있다. 애리조나 대학교의 메리 풀톤(Mary Poulton) 교수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친환경 재생 에너지 발전소를 건설할 경우 전통적인 발전소 보다 몇 배 이상의 구리가 필요하다”며, “친환경 에너지 시대로 전환된다는 것은 인류가 주로 사용하는 원소가 탄소(C)에서 구리(Cu)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국제 에너지 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에 따르면, 해상 풍력 발전소의 경우 메가와트 당 8000kg의 구리가 사용되며, 태양광은 2822kg/MW가 필요하다. 이는 석탄 발전(1150Kg/MW) 대비 2~8배 가량 더 많은 구리가 소요되는 것이다.
<발전 형태별 구리 사용량>
(단위: kg/MW)
[자료: International Energy Agency]
구리 광산 개발 난항으로 수요에 못 미치는 공급량
미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전 세계 구리 매장량은 28억 톤 규모다. 2022년 기준, 전 세계 광산의 연간 생산능력은 2700만 톤이며, 제련 생산능력은 3100만 톤이다. 재활용, 타 광물 채굴 시 추출을 통해 추가로 제련할 수 있기 때문에 제련 생산능력이 광산 생산능력보다 400만 톤 많다. 구리는 태평양 연안을 따라 주로 매장돼 있으며 칠레와 페루, 미국 애리조나주 등에 주요 채굴사가 광산을 개발하고 활발히 채굴 중이다. 주요 구리 생산 기업으로는 코델코(Codelco), 프리포트 맥모란(Freeport-McMoRan), BHP그룹, 그렌코어(Glencore), 써던 쿠퍼(Southern Copper), 퍼스트 퀀텀 미네랄(First Quantum Minerals), 리오 틴토(Rio Tinto), 앵글로 아메리칸(Anglo American) 등이 있다. 많은 광산 개발사들이 구리를 채굴, 제련하고 있지만 구리 재고량은 해가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런던금속거래소(London Metal Exchange)에 따르면, 구리 재고량은 2013년 최대치 67만8000톤을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해 최대치 10만7000톤을 기록했다. 지난해 최저치는 5만1000톤으로 10만 톤 이상을 넘기던 예년의 수치에서 급격히 감소했다. 이렇게 구리 재고량이 급감하게 된 원인으로는 급증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크다.
현재 구리는 전 세계 매장량의 12% 가량만 채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장량이 많아 광산을 추가로 개발해 채굴하면 될 것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신규 광산 개발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도이치 뱅크에 따르면, 광산 개발은 허가 과정만 최소 10년이 소요된다. 탐사, 타당성 검토, 인허가, 자금 조달, 건설, 시험 가동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과정 중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해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경우도 다수 발생해 20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북미 최대 구리 매장지로 각광 받던 알레스카주 페블(Pebble) 광산은 노던 다이너스티 미네랄(Northern Dynasty Minerals)사가 타당성 검토를 마치고 2018년에 건축 승인 심사(인허가)를 제출했다. 그러나 미 환경청은 광산 인근 어장 훼손, 환경 오염 등의 이유로 승인을 거부했다. 알레스카주는 미 연방대법원은 해당 광산의 개발을 지속할 수 있도록 미승인 철회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1월 기각되면서 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외에도 리오 틴토와 BHP가 추진 중인 애리조나 주의 레솔루션(Resolution) 광산 개발은 원주민의 반발과 환경 문제의 이유로 정부의 인허가가 불투명한 상태이며 안토파가스타(Antofagasta)가 개발 중이던 트윈 메탈(Twin Metal) 광산은 사전 타당성 검토 단계에 있던 2021년 20년간 개발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채굴 중인 광산에서도 생산에 차질을 빚는 경우도 있다. 파나마의 코브레 파나마(Cobre Panama)의 광산은 환경 훼손과 지역 주민의 건강에 대한 우려로 폐쇄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지난해 11월 파나마 법원이 지난 20년간 퍼스터 퀀텀 미네랄(First Quantum Minerals)의 채굴 허가는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코브레 파나마 광산이 폐쇄됐다. 앵글로 아메리칸(Anglo American)사는 회사의 재정적 이유로 2024년과 2025년의 구리 생산 목표량을 18~20% 가량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베일(Vale)사도 2024년 구리 생산량을 35만 톤에서 32만 톤으로 줄인다고 보고했다. 골드만삭스는 2024년 구리 공급량을 전년대비 5% 성장에서 3%로 하향 조정했으며 노트에서 2024년 정제 구리 시장에서53만4000톤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신규 광산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곳도 있다. 광산 전문지 마이닝닷컴(Mining.com)에 따르면, 현재 타당성 검토 단계에 있어 2030년 전에 신규 생산이 가능한 광산 프로젝트는 16곳으로 이 광산들의 구리 매장량은 1억5546만 톤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간 생산량을 2%로 봤을 때 2030년까지 신규 광산의 구리 공급량은 300만 톤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구리 수급 불균형으로 구리 가격이 상승하면서 기존 광산이 수익성 확보를 위해 광산 확장을 통해 생산량이 증가할 경우 구리 생산 규모는 지금보다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연도별 전 세계 구리 생산량>
(단위: 1000메트릭 톤)
[자료: International Copper Study Group]
시사점
투자은행에 근무 중인 A씨는 KOTRA 뉴욕 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구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2027년까지 원자재 시장에서 구리는 귀한 몸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티은행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2025년 구리 가격은 톤당 1만5000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구리 가격이 상승세에 있는 만큼 관련 산업에 많은 자금이 유입되면서 진출 기회를 탐색하는 우리 기업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직접적으로 구리의 제련, 가공 혹은 재활용 산업의 전망이 밝다. 또한, 구리를 사용이 많은 전력망 설치, 전기 자동차 부품, 충전소 설치, 배터리 산업, 원전 제작 산업 등 친환경 산업에 투자가 늘면서 미국 진출 기회가 넓어지고 있다. 관련 산업에 진출해 이미 공장을 건설하거나 가동 중인 한국 진출 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하고 관련한 인센티브 수혜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 내 관련 산업 경험이 많은 기업이 부족하다 보니 제반 시설을 받쳐줄 2차, 3차 밴더의 진출도 활발하다. 비슷한 경험치를 갖고 있지만 유럽이나 여타 국가들에 비해 가격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미국 시장 상황을 잘 살펴보고 진출을 고려해 볼 수 있는 시점이다.
자료: CNBC, Wall Street Journal, Bloomberg, Reuters, Mining.com, Goldman Sachs, London Metal Exchange, International Energy Agency, International Copper Study Group, Americans for a Clean Energy Grid, Copper Development Association, National Renewable Energy Lab, KOTRA 뉴욕 무역관 자료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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