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러시아의 경제 관계 및 전망
2022-04-01 독일 함부르크무역관 문기철
- 독일, 러시아산 에너지원과 주요 원자재 수입 의존성 높아
- 독일과 EU의 탈러시아 경제 정책으로 산업 전반의 가치사슬 재편 전망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라 현재 국제 사회는 러시아에 대해 초강경 경제 및 금융 제재를 시행하고 있다. 이번 경제 제재로 인해 러시아는 최악의 경제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하지만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자유를 지키는 데는 비용이 든다고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강력한 경제 제재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제재에 참여하는 국가들의 경제에도 적지 않은 피해를 주고 있다. 현재 미국과 함께 경제 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독일도 이번 제재로 인해 많은 경제적 타격이 예상되고 있다.
독일과 러시아의 경제 관계
거시 경제적 관점에서 독일 경제는 러시아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무역 통계를 보면 독일의 대러시아 수출 점유율은 1.9%로 전체 국가 중 14위이고 수입 점유율도 전체 12위(2.7%)로 중위권에 해당한다. 따라서 수치상으로 보면 러시아는 독일에 있어 중국이나 미국같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교역 파트너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이 실제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품목의 면모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쾰른 독일 경제연구소(IW)는 지난 3월 22일 발표한 '독일 경제 공급망과 러시아의 관련성'(Russlands Relevanz für die Lieferketten der deutschen Wirtschaft)이라는 짧은 보고서에서 러시아에 대한 독일의 경제 의존성이 실제 수치보다 더 높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 이유는 독일이 러시아로부터 가치사슬에 첫 단계에 해당하는 원자재를 주로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은 러시아로부터 가스, 석탄, 석유와 같은 에너지원을 주로 수입하고 있는데, 수입 의존성이 가스 55%, 석탄 50%, 석유 35%로 매우 높은 편이다. 독일 경제 전문지 한델스블라트에 따르면, 독일은 2014년부터 현재까지 러시아산 에너지원 수입에 약 1700억 유로를 지출했다. 이처럼 독일은 러시아산 에너지원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으며, 가스의 경우는 전력 에너지와 난방 에너지뿐만 아니라 암모니아 생산 등을 위한 원자재로도 활용되고 있어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중단될 경우 독일은 당장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독일 연방정부는 각계 각층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산 에너지원 수입을 즉각 중단하는 에너지 금수조치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독일 연방경제기후보호부 장관 로베르트 하벡은 지난 3월 9일 ZDF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러시아 가스 수입을 즉각 중단할 경우 독일 경제는 5%의 역성장이 예상된다“며, 코로나 19로 인한 경제 손실을 극복하고 있는 현시점에 독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치에 선뜻 동참하기 어려운 연방정부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에너지원 외에도 독일은 팔라듐, 알루미늄과 같은 원자재의 수입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팔라듐은 구리·니켈·백금 등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은백색 금속으로 가솔린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정화하는 산화 촉매제로 사용된다. 그래서 팔라듐은 친환경 정책을 추진하는 EU에서 수요가 많은 원자재다. 러시아는 연간 100톤에 가까운 팔라듐을 생산하는 세계 1위 생산 국가로 세계 시장 점유율이 40%에 달한다. 독일은 전세계 팔라듐의 17%를 수입하고 있는데, 특히 러시아에 수입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독일은 러시아가 수출하는 팔라듐의 20%를 수입하며, 이는 벨기에(31%)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또한 러시아는 자동차 제조에 있어 중요한 원자재 중 하나인 알루미늄의 최대 수출국 중 하나이다.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 3위에 생산 국가이자 최대 수출국 중 하나이다. 독일은 자동차 제조업에서 경금속 수요가 높아 일본과 더불어 러시아산 알루미늄의 최대 수입국이다. 독일은 러시아 알루미늄 전체 수출량의 8.6%를 수입하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독일의 실제 경제 의존성은 OECD의 국가간 부가가치 기준 무역을 보면 보다 더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국가간 부가가치 기준의 무역(TiVA)은 특정국가의 최종 수요를 위해 각 국가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의 크기를 다루는 통계*이다. 이 부가가치 기준 무역에 따르면, 독일은 금속, 화학, 운송, 제조업 등에서 러시아산 원자재의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예를 들어 5만 유로 가치가 있는 독일 자동차에는 총 500유로의 러시아 부가가치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 중 150유로는 에너지원이고 350유로는 팔라듐과 같은 기타 원자재다. 또한 10만 유로 가치의 독일 기계제품에는 270유로 에너지원, 670유로 기타 원자재의 부가가치가 포함되어 있다.
주*: 국가 간 총액 기준(gross value)으로 측정 되는 기존의 수출입과 달리 상대국의 최종수요로 인해 자국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의 이입(VA-in; 무역통계의 수출과 대응)과 자국의 최종 수요로 인해 상대국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의 이출(VA-out; 무역통계의 수입과 대응)로 측정(자료: 한국은행)
부가가치 기준 무역을 독일 전체 산업에 적용하면 최종 수요에 창출되는 총부가가치 중 1%가 러시아산 원자재에서 창출된다. 즉, 독일은 가치사슬 첫 단계에서 약 1%를 러시아 원자재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독일과 러시아의 교역이 중단되는 등 양국의 경제 관계가 변화할 경우, 독일 주요 산업의 가치사슬의 재편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은 독일 경제에도 어떠한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또한 독일이 EU내 제조업을 이끄는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에 EU전체의 가치사슬과 경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쾰른 독일 경제연구소의 갈리아나 콜레브 교수(Prof. Dr. Galiana Kolev)는 “러시아에서 수입되는 제품들이 가치사슬의 시작점에 있는 만큼 독일과 러시아 간 교역에서 가치사슬의 복잡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러시아와의 교역이 완전 중단되면 가치사슬의 조정이 불가피한데, 이미 반도체 부족 사태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기존의 가치사슬을 조정하는 것은 아주 복잡하고 또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레브 교수는 독일이 러시아에 대한 수입 의존성을 줄이는 것이 공급망 다변화를 이룰 수 있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독일 경제에 더 이롭다고 판단한다. 그에 따르면, 에너지원의 경우 화석 에너지 수요가 친환경 정책으로 줄고 있고, 의존성이 높은 천연가스의 경우도 액화 천연가스로 대체가 가능하다. 또한 남아프리카에 세계 매장량의 88.7%에 해당하는 백금족 금속(Platinum Group Metals, PGMs)이 매장돼 있어 팔라듐 대체 공급망 구축도 가능하다.
독일 정부 대응책
콜레브 교수와 같이 독일의 경제학자들은 에너지원 및 원자재 수입에 있어 러시아의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독일 경제에 이득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독일 연방정부 역시 러시아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은 공감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연방정부 입장에서는 원자재 및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과 제품 가격 상승으로 또한 피해를 보고 있는 소비자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독일의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성은 매우 높은 편이기 때문에 공급이 즉각 중단되면 전력난이 발생할 수 있고, 수많은 기업이 생산을 중단하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독일 연방정부는 각계 각층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체 에너지 인프라가 구축될 때까지 노드스트림1을 통한 가스 수입은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비우호적 국가들에 대한 가스 결제 대금을 4월부터 루블화로 지불하도록 요구하면서 독일 연방정부는 가스 공급 부재의 상황도 또한 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3월 25일 하벡 장관의 기자회견에 따르면, 현재 독일은 천연가스를 제외하고 러시아 에너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빠르게 줄고 있다.
독일 신호등 연정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기업과 가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160억 유로 규모의 1차 구호 패키지를 2월 23일 승인한데 이어 3월 24일 2차 구호 패키지에도 합의했다. 구호 패키지의 예산 총규모는 약 300억 유로이며 주로 에너지세 경감면 등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전망 및 시사점
지난 3월 28일 화상회의로 개최된 G7 에너지 장관 화상회의에서 각 국 장관들은 천연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라는 러시아의 요구를 거부하기로 합의 했다. 독일 연방경제기후보호부 하벡 장관은 기자 회견을 통해 회의에 참석한 각 국 장관들이 러시아의 루블화 결제 요구가 일방적이고 명백한 기존 계약 위반이라는데 이견이 없었다고 밝혔다. 독일은 러시아가 가스 대금 루블화로 결제하라고 통보한 기한 하루 전인 3월 30일 가스 공급 중단 비상사태 조기 경보를 발동했으며, 공급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전담팀을 배치해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에 대비하고 있다.
EU 역시 미국과 에너지 부문 협력 강화를 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3월 25일 EU 집행위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위원장과 바이든 대통령이 액화천연가스 공급에 합의함에 따라, EU는 올해 미국으로부터 최소 150억㎥ 액화천연가스(LNG)를 추가로 공급받기로 했다. 또한 EU 집행위는 회원국 및 시장 참가자와 공동으로 협력하여 새로 구축되는 EU 에너지 플랫폼을 통해 수요를 집계해 최소 2030년까지 최소 500억m³에 달하는 미국산 LNG를 추가 공급받아 공급과 수요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조치할 예정이다. 연간 500억m³에 이르는 가스량은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공급되는 가스의 1/3을 대체할 수 있는 규모이다. 그리고 액화 천연가스 인프라 구축을 위한 평가와 승인 절차를 가속화하기 위해 EU 회원국과 지속적으로 협력할 예정이다.
이번 경제 제재를 계기로 러시아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이처럼 독일과 EU 집행위는 중장기적인 경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따라서 독일과 EU 국가들의 탈러시아 경제 행보는 향후 몇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독일 및 EU 국가들은 가치사슬의 첫 단계에 해당하는 원자재를 러시아로부터 공급받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탈러시아 경제 행보는 유럽에서 산업 전반의 가치사슬이 재편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상되는 방향성은 원자재에서 중간재까지 보다 더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고 위기 상황에 쉽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독일과 EU는 원자재 글로벌 공급망을 확대하는 것과 함께 EU 내 중간재 생산 시설을 구축하여 중간재 공급망 안정화를 꾀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독일과 EU가 중간재 공급자들을 위한 투자 정책을 시행할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중간재를 주로 생산 및 공급하는 한국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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