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국 민감국가’ 지정, 무엇이 문제고 이유는 뭘까
최근 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 국가 목록’에 추가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크게 걱정할 사안이 아니라는 의견과 심각한 사인이라는 주장이 엇갈리는데요. 왜 미국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했는지 하나씩 추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미 에너지부가 지정한 민감국가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는 국가 안보나 핵확산 우려, 테러 지원 등의 이유로 관리하는 국가를 의미합니다.
미 에너지부의 민감국가로 지정된 것은 결코 ‘별일 아닐 수’ 없습니다. 미 행정부 차원에서 단순한 분류가 아닌, 국가 차원의 협력에서도 공식적으로 패널티를 주겠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전 세계의 패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민감국가로 지정한다는 것은 향후 에너지 개발을 둘러싼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민감국가로 분류되면서 가장 먼저 미국과의 기술 협력에서 다른 나라보다 까다로운 과정을 겪게 됩니다. 원자력, 인공지능, 양자기술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한국 연구자들은 미국 에너지부 산하 기관이나 프로젝트에 참여할 경우 까다로운 승인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배제될 수도 있죠.
특히 미 에너지부가 지정한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리스트를 보면 생각보다 간단하게 여길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민감국가를 보면 중국과 러시아 같은 미국의 적성국가거나, 북한, 리비아, 수단, 시리아, 이란, 쿠바와 같은 미국이 지정한 테러리스트 국가입니다.
미국의 우호국 중에서는 인도, 이스라엘, 대만 등이 있는데 이들 국가는 실질적인 핵무장국이거나 대만처럼 1980년대까지 핵개발을 추진한 전력이 있는 국가죠. 한국의 경우 적성국가나 테러리스트 국가로 분류된 것은 아닐테고, 아마 핵개발 가능성이 있는 쪽으로 분류한 듯 싶습니다.
◆ 한국 연구원이 어긴 보안 규정...민감국가 분류 ‘명분’ 됐나
미 에너지부는 민감국가에 한국을 넣은 것에 대해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분류 원인은 국내외 외신이나 전문가들을 통해 나온 추측입니다.
가장 먼저 거론된 원인은 미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한국 연구원들이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보안 규정을 어기고 무단으로 프로젝트 정보를 들고 한국으로 들어가 적발됐다는 점입니다.
이 연구원이 어떠한 목적으로 보안 규정을 어겼는지, 무단으로 가지고 온 정보를 어떻게 하려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국익을 위해서 그런 일을 저질렀을 수도 있고, 사익을 추구 했을 수도 있죠. 다만 이 연구원이 한국인이었고, 정보를 가지고 도착한 곳이 한국이었다는 점 입니다.
하지만 이 일로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했다는 점은 석연치 않습니다. 개인의 일을 국가 간의 일로 키우는 건 역사적으로도 명분일 가능성이 낮습니다. 이번 일로 한미 관계의 균열로 이어진다면 미국 입장에서도 손해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했다는 건, 복잡한 원인이 섞여 있다는 의미며, 미국 입장에선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을 거라는 계산이 깔려있다는 분석입니다.
◆ 확산되는 한국 ‘핵무장론’ 견제 차원일까
특히 한국의 경우 언제든 핵무장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원자력 기술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보다 원전 기술이 뛰어난 나라는 다섯 곳이 채 되지 않습니다. 즉, 한국의 입장에선 마음만 먹으면 몇 년 내로 핵무장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원천 기술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주요 감시 대상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한국은 과거 IAEA로부터 한 번 ‘찍힌’ 일이 있습니다. 2004년 IAEA는 한국이 1982년부터 2000년까지 수차례의 우라늄 변환 농축과 플루토늄 분리 관련 실험들을 신고 없이 진행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분리는 핵실험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 입니다. 보통 원자력발전에서 쓰이는 기술이 ‘재처리’ 과정까지 가진 않습니다.
이 같은 IAEA 파동이 발생하면서 국내외 기관은 물론 언론들도 모두 달려들어 한국의 핵개발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확실한 건, 당시 한국은 핵무장을 위해서 재처리 실험을 한게 아닌, 순수한 호기심으로 실험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의도가 어쨌든 한국은 1970년대 핵무장 시도에 이어 두 번의 ‘의심털’이 박힌 건 사실입니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했다는 추측이 있습니다. 특히 최근 한국에선 핵무장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월 한국갤럽의 설문조사 결과 국민의 72.8%가 핵무장에 찬성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지난 연말에 벌어진 계엄사태로 미국 입장에선 불안을 느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로이터 통신은 한국이 비상계엄 선포하고 핵무기를 개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 가운데 민감국가 지정 지침이 내려졌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 한국수력원자력과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경쟁과 견제 가능성
미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한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히는 건 ‘글로벌 원자력 기술 경쟁’ 입니다. 미 에너지부는 2020년 4월 ‘미국 원자력 에너지 경쟁 우위 복원’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이 보고서에선 핵심 원자력 기술을 가지고 있는 미국 웨스팅하우스 기업에 대한 내용도 포함돼 있었죠. 그리고 웨스팅하우스의 가장 경쟁자로 꼽히는 기업이 바로 한국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입니다.
웨스팅하우스와 한수원의 관계는 협력 대상이면서도 경쟁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한수원이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는 원자로는 ‘APR1400’ 입니다. 다른 나라의 원자로보다 가격 경쟁력이 훌륭한 한국의 자랑스러운 수출 품목이죠.
한수원의 APR1400는 웨스팅하우스의 AP1000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기술로 생산한 모델입니다. APR1400이 웨스팅하우스의 모델을 기반으로 했다고 해서 지식재산권의 침해는 아니라는 의견이 대다수입니다. 쉽게 말해 현대차가 가솔린 엔진을 만들면서 처음 가솔린 엔진을 처음 개발한 다임러 사(오늘날 메르세데스-벤츠 그룹)에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죠.
하지만 웨스팅하우스는 체코 두코바니 원전 건설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한수원을 상대로 지적재산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특히 웨스팅하우스는 체코 원전 사업에서 한수원과 프랑스전력공사(EDF)와 경쟁하다가 일찌감치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사례만 봐도 웨스팅하우스과 한수원은 경쟁 관계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물론 올해 1월 16일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는 지식재산권 분쟁 절차를 중단하고 향후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했지만, 지난해 12월에 이뤄진 한국의 민감국가 분류에 한수원-웨스팅하우스 분쟁이 간접적인 영향을 준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번 한국의 민감국가 분류 사건은 다소 무거운 사안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일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에너지 경쟁에 있어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또 글로벌 에너지 경쟁은 냉혹하다는 점이죠.
물론 우리 정부는 한국이 민감국가에서 제외되도록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1980년대에 민감국가로 분류됐다가 1994년에 제외된 적도 있던 만큼, 이번에도 불가능한 일은 아닌듯 합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우리가 미래에 격변하는 글로벌 정세에서 생존하기 위해 에너지에 대한 어떤 관점이 있어야 하는지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범수 세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