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품 속의 에너지 ① 핵융합

SF 작품 속의 에너지 ① 핵융합
 
고호관 작가
 
오늘날 우리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때문에 큰 난관에 빠져 있습니다. 아무 활동도 하지 않고 에너지도 쓰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 난관을 빠져나가는 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아무 걱정할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SF작가들은 미래를 그리면서 다양한 에너지원을 상상합니다. 이론적으로 가능하고 실제로도 개발 중인 에너지원이 상용화되었다고 가정하기도 하고, 정말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작가가 직접 상상해서 새로운 에너지원을 만들어내기도 하지요.
 
과연 어떤 에너지원들일까요? 하나씩 소개할수록 점점 더 황당한 아이디어가 나올 테니 처음에는 그다지 낯설지 않은 에너지원을 소개하겠습니다. 바로 ‘핵융합’입니다.
 
오늘날의 원자력발전소는 ‘핵분열’을 통해 에너지를 발생시킵니다. 원료는 우라늄이지요. 우라늄 원자핵이 중성자와 충돌해 분열하면서 남는 질량이 에너지로 바뀌는 원리입니다. 온실가스를 내뿜지 않고 전기를 만들 수 있어서 좋지만, 이 과정에서 방사선도 방출되고, 방사성 폐기물도 나오고,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사고 위험도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핵융합’은 이와 다릅니다. 핵분열과 반대로 가벼운 원자가 융합해 더 무거운 원자가 되는 반응을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과정에서 남는 질량이 에너지로 바뀌지요. 태양 같은 별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핵융합입니다.
 
국제핵융합실험로(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 ITER) 개발 사업
국제핵융합실험로(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 ITER) 개발 사업은 핵융합에너지의 상용화 가능성을 실증하기 위한 국제공동 과학기술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 일본, 중국, 인도 등 7개국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 ITER
 
핵융합 발전은 지금의 핵분열 발전과 비교해 장점이 많습니다. 연료(수소)가 풍부하고, 방사성 폐기물이 획기적으로 적어지고, 큰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없습니다. 핵분열은 연쇄 반응을 제어해야 하는 반면, 핵융합 반응은 이를 일으키는 게 너무 어려워서 사고가 나면 그냥 멈추고 말 뿐입니다. 문제는 핵융합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초고온, 초고압 상태를 유지하는 게 어려워 아직 상용화가 되지 않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도 자유롭게 쓸 수만 있으면 장점이 많은 에너지원이기에 다양한 SF 작품에서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등장합니다. 
 
우리는 지금 전기를 만들기 위해 핵융합을 연구하지만, SF 작품에서는 우주선의 추진 방법으로도 쓰입니다. 우주선을 움직이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전기를 만든 뒤 전기로 이온 추진기를 작동시키는 겁니다. 현재 인공위성이나 우주탐사선에 쓰이는 이온 추진기에 핵융합 발전을 결합한 것이지요. 다른 하나는 추진체를 가열해 내뿜거나 핵융합 반응의 부산물을 내뿜어 움직이는 방법입니다. SF에 흔히 쓰이는 방법이면서, 실제로도 진지하게 연구되고 있는 기술입니다. 
 
우주선에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핵융합로를 만드는 게 먼저겠지만, 핵융합으로 우주선을 움직일 수 있다면 장점이 많습니다. 적은 연료로도 많은 에너지를 만들 수 있으므로 장기간 항해가 가능해집니다. 심지어 연료로 쓸 수 있는 수소는 밀도가 매우 낮긴 해도 우주 공간에 널려 있습니다.
 
버사드 램제트를 이용한 항성간 우주선의 상상도
버사드 램제트를 이용한 항성간 우주선의 상상도 © Adrian Mann
 
우주선이 움직이면서 스스로 연료를 보충할 수 있다면, 커다란 제약이 사라지는 셈입니다.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가 1960년에 물리학자 로버트 버사드가 제안한 버사드 램제트라는 우주선 추진법입니다. 우주선의 전방에 깔때기 같은 커다란 장치를 달고 강력한 전자기장을 이용해 우주 공간의 수소를 모읍니다. 이 수소로 핵융합을 일으켜 계속 앞으로 움직이는 것지요. 우주선이 빨리 움직일수록 더 많은 수소를 모을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은 폴 앤더슨의 소설 ‘타우 제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소설에서 외계행성을 개척하러 떠난 램제트 우주선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고장이 납니다. 엔진을 고칠 수도 끌 수도 없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계속 앞으로 움직입니다. 연료는 우주 공간에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끝도 없이 앞으로 가게 되지요. 이 외에도 수많은 작품에서, 많은 경우에 그냥 지나가듯이 핵융합로나 핵융합 추진이 등장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널리 쓰일 정도가 되려면 극복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일단 핵융합에 필요한 초고온과 초고압이 큰 문제입니다. 이런 제약만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어떤 SF 작가들은 ‘상온핵융합’ 기술이 가능해진 미래를 그리기도 합니다. 상온핵융합이란 말 그대로 상온, 우리가 평소 생활하는 수준의 온도에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기술입니다. 성공만 한다면 당연히 엄청나겠지요. 예를 들어 아서 클라크의 ‘신의 망치’는 상온핵융합 기술 개발로 에너지 혁명이 온 미래가 배경입니다. 여기에는 가정에서 쓸 수 있는 소형 핵융합로도 등장합니다.
 
아서 클라크의 신의 망치
아서 클라크의 신의 망치. 상온핵융합이 상용화된 세계를 그립니다. © 아작
 
1980년대에 마틴 플라이슈만과 스탠리 폰즈라는 두 과학자가 상온핵융합에 성공했다고 발표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결국 사기로 드러났고, 아직까지 가능한 방법은 찾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찾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가끔 작가들은 특이한 에너지원의 이름을 마음대로 짓기도 하는데, 류츠신의 ‘유랑지구’에는 ‘중원소핵융합’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태양의 폭발을 피해 지구에 엔진을 설치해서 통째로 옮기는 계획이 이루어지는 이야기인데, 엔진이 작동하는 원리가 중원소핵융합이라고 설명합니다. 아무런 원리 설명 없이 지나가듯 언급하고 말기 때문에 원리는 짐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작가도 별생각 없이 적었을지도 모릅니다. 
 
단어만 가지고 추측하자면, 수소가 아니라 중원소를 이용해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기술로 보이는데요, 보통 수소나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를 중원소라고 합니다. 다만 중원소 중 철보다 무거운 원소는 핵융합을 일으켜 에너지를 얻을 수 없습니다. 핵융합할 때 오히려 에너지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탄소나 산소, 규소 등의 원소를 이용해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기술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지구의 지각에 가장 풍부한 원소가 산소와 규소니까 이것을 연료로 사용한다면 말이 되는 듯합니다. 아마도 작가가 상상한 ‘중원소핵융합’은 이런 기술이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상상 속 기술까지 가능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 이야기할 여러 에너지원 중에서 그나마 가장 현실적으로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것이 바로 핵융합입니다. 상용화된 핵융합 기술을 SF 작품이 아닌 현실에서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출처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 블로그
  • 페이스북
  • 카카오톡
  • 트위터